[용어 톺아보기]사회적 처방, 의료를 넘어 관계를 처방하다

6391bff870cf1.jpg2018년 영국 외로움 담장 장관, 트레이시 크로우치  출처:Wikimedia Commons


의료를 넘어 관계를 처방하다

2018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Ministry for Loneliness)’을 국가 정책 의제로 공식화하고, 문화·미디어·스포츠부(DCMS) 장관이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겸하도록 했다. 외로움을 개인의 감정 문제가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규정하고, 이를 국가 보건 전략 안에 포함시킨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2021년 일본 역시 내각부에 ‘고독·고립 담당 장관’을 임명하며, 고독사,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자살 문제 등에 대해 범정부적 대응을 본격화했다. 이처럼 관계 단절, 외로움, 고립, 은둔은 더 이상 개인의 성향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장관을 임명하는 것만으로 사회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설계다.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해법으로 등장했다. 의료 중심의 개입을 넘어, 사람들을 예술·스포츠·자연 활동·자원봉사·친구 맺기 등 지역사회 기반의 비의료적 활동과 연결함으로써 건강과 웰빙을 회복하도록 돕는 접근이다. 이는 전통적인 의료가 종종 놓쳐온 외로움과 고립이라는 근본 원인을 다루기 위한 새로운 처방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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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국 브롬리 GP 얼라이언스 사이트(https://bromleygpalliance.org/who-is-a-social-prescriber-and-how-can-they-help-me/)


사회적 처방의 개념

사회적 처방(Social Prescribing)은 의사나 간호사 등 보건의료 종사자가 약물이나 임상 치료 대신, 개인의 건강과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비의료적 요인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사회 자원과 연결하는 접근 방식이다. 여기서 처방의 대상은 약이 아니라 사람, 활동, 관계, 그리고 지역사회다.

사회적 처방은 우울, 불안, 만성질환, 고립감과 같이 의료적 개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대상으로 한다. 의료체계 안에서 발견된 개인의 어려움을 문화·예술·체육·학습·자조모임·자원봉사 등 지역사회 활동과 연결함으로써, 개인이 다시 사회적 관계 속으로 진입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처방은 치료의 영역을 병원 밖으로 확장하는 시도이며, 건강을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조건의 결과로 인식하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사회적 처방의 등장과 발전 과정

사회적 처방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배경에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변화가 있다. 고령화, 1인 가구 증가, 만성질환의 확산, 정신건강 문제의 증가는 의료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지만, 기존의 의료 중심 시스템만으로는 이러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우울, 치매, 심혈관 질환 등 다양한 건강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을 국가 차원의 정책 의제로 설정하고,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사회적 처방 제도를 도입했다. 의료인이 환자를 지역사회 자원과 연결해주는 구조를 제도화하고, 이를 지원하는 전담 인력(Link Worker)을 배치하면서 사회적 처방은 개인 맞춤형 돌봄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사회적 처방은 NHS 장기계획과 개인맞춤형 돌봄 모델의 주요 구성 요소로 포함되며, 예방 중심 보건의료 정책의 대표 사례로 발전해왔다.

 

주요 개념

 사회적 처방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개념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비의료적 자산(Community Assets)

사회적 처방에서 활용되는 자산은 의료 서비스가 아니라 지역사회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문화, 공간, 사람, 활동이다. 이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던 자원을 연결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에 가깝다.

· 의뢰/추천(Referral)
의료 전문가(예: 일반의)나 신뢰받는 지역사회 인사는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필요를 가진 사람을 식별한다.

· 연결인력(Link Worker 또는 Navigator)
사회적 처방은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안내가 아니라, 개인의 욕구와 상황을 이해하고 실제 참여로 이어지도록 돕는 과정이다. 연결인력은 개인과 지역사회를 잇는 핵심 매개자로서, 사회적 처방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 협력(Co-production)
환자를 관련 지역 그룹 및 활동과 연결하기 위한 맞춤형 계획, 즉 '사회적 처방'을 만든다

· 강점 기반 접근(Strength-based approach)
사회적 처방은 개인의 결핍이나 문제를 진단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개인이 이미 가지고 있는 관심사와 역량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참여의 지속성과 주체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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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cial Prescribing Pathway >
출처: Amber Lavans, Bethan Jenkins & Amrita Jesurasa(2023), Social Prescribing Case Studies: Full report, GIG CYMRU NHS, Wales.




적용 사례

영국에서는 사회적 처방이 1차 의료체계 전반에 걸쳐 확산되었으며, 걷기 모임, 원예 활동, 예술 프로그램, 자조모임 참여 등이 대표적인 처방 사례로 활용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회적 처방을 통해 응급의료 이용이 감소하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성과가 확인되기도 했다.


  해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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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reen Social Prescribing(자연 기반 활동 처방)

 NHS Long Term Plan 일환으로 정신건강 개선 및 건강 불평등 해소 목적으로 2021년부터 약 £5.77m 규모의 Green Social Prescribing Programme을 운영하고 있다. 자연 기반 활동(커뮤니티 정원, 걷기 그룹, 개방 공간 운동, 오픈 워터 수영 등)을 사회적 처방으로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연산책그룹, 커뮤니티 가드닝, 녹지 공간을 활용한 운동 및 정신건강 활동을 진행한다. 사회적 처방은 단지 모임 참여뿐 아니라 자연·환경 자원과 연결된 활동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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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rtlift 홈페이지

2) Arts on Prescription 프로그램 (Artlift 등 지역 기반 예술 처방)

Arts on Prescription은 예술 활동을 비의료적 처방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으로, 예술 기반의 활동이 정신적·사회적 웰빙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경험적·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히 예술적 참여를 넘어, 사회적 연결, 자기표현, 긍정적 정서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참여자는 지역 커뮤니티의 예술 워크숍, 창작 클래스, 그룹 프로젝트 등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며, 이는 외로움 감소와 사회적 관계 형성에 기여한다. 앞서 살펴본 자연 기반 활동이 신체 활동 + 마음 안정 효과에 초점을 맞춘다면,  Arts on Prescription은 창의적 활동을 기반으로 사회적 관계와 자아표현을 촉진하는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대표 사례로는 Artlift가 있다. 정신 건강 문제나 만성 통증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인을 대상으로 예술 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약 8~10회 과정으로 구성되며, 예술가가 주도하는 워크숍 + 크리에이티브 체크인 세션이 포함된다(https://artlift.org/our-courses). 창조적 활동 참여 자체가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프로그램 종료 후에도 참여자 주도 모임(온라인 허브 등)으로 확장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국내 사례  

국내에서는 아직 사회적 처방이라는 용어가 제도적으로 정착되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시도가 점차 등장하고 있다. 외로움 대응 정책, 연결사회 사업, 문화·체육 기반 치유 프로그램, 지역 거점 중심의 관계 회복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최근에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예방·치유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의료·복지·문화 정책을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사회적 처방이 한국 사회에서도 점진적으로 정책 언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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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서울시복지재단 유튜브

1) 서울시: 서울연결처방 사업

서울시는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시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2025년부터 ‘서울연결처방’이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사업은 영국의 사회적 처방 개념을 참고하여, 단순한 의료적 접근을 넘어서 사회적 관계 형성 및 지역사회 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사업 수행기관인 서울시복지재단 고립예방센터는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시민들을 위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서울연결처방 사업을 3월말부터 4개월간 799명이 상담을 받고, 478명이 실제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외로움 및 고립가구 체크리스트’를 활용하여 고립당사자를 확인하고, 발굴된 대상자에게 적합한 프로그램(문화·예술·스포츠·소통 활동 등)을 처방(연계)하여 사회적 고립으로 파생되는 문제들을 개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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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광산구 사회적건강관리 공식블로그

2) 광주 광산구: 사회적 처방 건강관리소

기초지자체 단위에서도 사회적 처방 실험이 진행된 바 있다. 광주 광산구는 ‘사회적 처방’을 키워드로 건강관리소 차원의 개입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들의 고립·외로움 문제를 실생활 속 활동 연결로 풀어내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다. ‘시장 구경’ 등 생활형 처방을 통해 관계 및 사회참여 촉진,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이웃지기 연결 → 관계망 형성 유도, 건강관리소 기반에서 식단·운동·사회활동 등 총체적 처방을 제공하는 등 단순 의료·복지 서비스가 아니라, 지역 활동과의 연계가 건강 증진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처방적 개입 모델임을 보여주었다.

 



사회적 처방을 이해할 때 주의해야 할 점

사회적 처방은 만능 해결책이 아니다. 모든 건강 문제를 사회적 처방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오해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중증 질환이나 복합적 의료 욕구가 있는 경우에는 의료적 개입이 우선되어야 하며, 사회적 처방은 이를 보완하는 역할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처방이 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활용될 경우,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공공의 역할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오용될 위험도 존재한다. 사회적 처방은 비용 절감이 아니라 삶의 질과 사회적 연결 회복을 목표로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지역 자원과 인력,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사회적 처방, 사회적 연결을 설계하는 ESG 도구

앞으로 사회적 처방은 보건의료 정책의 한 축을 넘어, 기업과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ESG 전략의 실천 수단으로 확장할 수 있다. 외로움과 사회적 고립은 단순한 복지 이슈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자본의 약화를 드러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적 처방은 단발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역 자산과 사람을 연결함으로써 사회적 가치 창출 구조를 설계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예방 중심의 사회문제 대응, 지역 기반 돌봄, 관계 회복을 중시하는 ESG 흐름 속에서 사회적 처방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영향(S), 지역 거버넌스(G)를 동시에 연결하는 접점으로 기능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고독사, 외로움, 사회적 고립을 사후 대응이 아닌 예방과 회복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사회적 처방은 공공과 민간이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ESG 협력 모델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의료비를 줄이기 위한 대안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사회와 연결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투자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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